목적지 없이 떠나는 여행

목적지 없이떠나는 여행

후배 녀석이 7년 넘게 사귄 여자와 실컷 싸우고 헤어졌다. 녀석은 그녀를 잊어야겠다는 핑계를 대며 지인들과 술을 마셨는데 정확히 말하면 내게 술을 사 달라고 했다, 얼큰하게 취하고 나서는 옛 여자친구 이야기를 꺼냈다. 만고불변의 진리가 떠오른다. 늘 술이 문제다.

중요한 건 평소 문학이나 드라마와는 담을 쌓고 사는 녀석의 입에서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는 거다.

“선배, 우린 목적지 없이 여행길에 올랐던 것 같아요, 목적지 없이….”

녀석의 표현이 그랬다. 사랑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종착지를 정하지 않은 채 무작정 둘만의 여행을 떠났으나, 어디선가 깊은 미궁으로 빠져들었고 결국 길을 잃었노라고.

그러면서 녀석은 “괜찮아요. 곧 잊을 테죠…” 하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뱉으며 전두엽이 잘려나간 사람처럼 흐리멍덩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그 표정은 ‘제 사정을 들었으니 이제 형식적인 위로나 격려라도 좀 해주세요. 그래야 견딜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금만 지나면 곧 무뎌질 거야”라거나 “시간이라는 만병통치약이 있잖아” 같은 식상한 멘트를 쏟아내며 어설픈 위로를 건네기 싫었다.

  그저 뜬금없이 류시화 시인의 ‘나무의 시’에 나오는 짤막한 구절을 들려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후배의 넋두리를 듣다 보니 오래전 나를 스쳐 지나간 추억과 상념이 스멀스멀 피어올라서, 녀석이 들을 듯 말 듯 한 소리로 혼자 조용히 읊조렸던 것 같다.

  “나무에 대한 시를 쓰려면 먼저 눈을 감고 나무가 되어야지. 너의 전 생애가 나무처럼 흔들려야지….”

난 건하게 취한 후배를 택시에 욱여넣다시피 한 다음 심야버스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옆좌석에서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뭐가 그리 좋은지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한 채 키득대고 있었다. 그들을 슬쩍 바라보다가 사랑의 생성과 소멸에 대해 생각했다.

우린 사랑에 이끌리게 되면 황량한 사막에서 야자수라도 발견한 것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다가선다. 그 나무를, 상대방을 알고 싶은 마음에 부리나케 뛰어간다. 그러나 둘만의 극적인 여행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순간 서늘한 진리를 깨닫게 된다.

爱情降临时,我们如同在浩渺苍凉的荒漠中得见一棵绿意盎然的椰子树,于是我们便迫不及待地奔跑起来,朝着那抹绿意,朝着那个人,步伐奋不顾身。然而当这场戏剧般的旅程走到尽头,我们不禁幡然醒悟,

  내 발걸음은 ‘네’가 아닌 ‘나’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을.

原来那些热切的步伐,从来不是走向“你”,而是一直迈向“我”。

이 역시 사랑의 씁쓸한 단면이 아닐 수 없다.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这无疑是爱情薄凉的一面。缘起,是因为想了解“你”的一切,缘尽,才发现这不过是场“自我”的修行。而或许,这便是爱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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