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그럼 미친 척이라도 해보세요." [1]
드라마 <피고인>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사람을 죽인 극중 피의자는 심지어 대중 앞에서 헛것이 보이는 연기도 했지요. [2]
심신미약에 의한 감형. [3]
작가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좀 더 극적으로 차용되긴 했겠지만 그것이 단지 드라마 속에서만 있는 일은 아니라는 공유된 기억들로 인해서 사람들은 더 감정이입이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4]
아마도 모두의 머릿속엔 실제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이 겹쳐서 떠올랐을 것입니다. [5]
강남역 살인사건 (2016년) 무기징역 구형
- "피해망상 등 정신 질환이 있었다." 징역 30년 선고
조두순 사건 (2008년) 무기징역 구형
- "알코올 의존증으로 술에 취해 있었다." 징역 12년선고
심신미약을 주장했어도 인정되지 않은 사례들이 대다수라는 건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6]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하나의 사건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은 왜인가… [7]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데…[8]
그렇다면 심신미약자는 사람을 죽여도 책임이 덜해지는가… [9]
어찌 보면 이 단순하고도 절실한 의구심과 냉정해야 할 법적 책임주의와의 충돌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형법상 책임주의
: 책임능력이 있고, 고의나 과실이 있을 때 책임을 묻는 원칙
"오랫동안 형법을 연구하고 논의한 끝에 만들어진 책임주의 원칙…허물어져서는 안 된다"
-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책임주의를 전면 해제하는 부분은 신중해야 한다"
- 황태정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그리고 시민들의 법 감정에 따라 양형의 기준이 바뀌는 것이 진보인가 후퇴인가…
혹은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인가에 대한 고민도 계속되겠지요.
다만 만취한 운전자의 차량에 치인 청년의 사건에서도 그랬고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대해서도 그렇듯이 이른바 심신 미약에 대한 시민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미친 척이라도 해보세요."
극중에 나오는 변호사의 권유 아닌 권유는 결국 이른바 심신미약이라는 것이 최후의 도피처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은연중에 말해주고 있지만…
평범하고도 선한 많은 이들에게 '나 역시 언제든 공격을 당할 수 있다'는 공포로부터 도피할 수 있는 세상은 어디인가…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1]. (이)라도: It can be used to show that something is not ideal, but it is acceptable for now.
[2]. N+(을): 목적어 / N+(는): 주어
[3]. 심신미약(心神微弱): 판단력 등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를 심신상실, 판단력 등이 있긴 있는데 부실한 경우를 심신미약이라 한다.
[4].
- 가미되다: 음식에 양념이나 식료품이 더 들어가 맛이 나게 되다
- 극적으로: dramatically
- 차용되다: 돈이나 물건 따위가 빌려져서 쓰이다
-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오로지 (only, just)
- 감정이입: 感情移入
[5]. 겹치다(겹쳐서): 여러 사물이나 내용 따위가 서로 덧놓이거나 포개어지다.